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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대통령 부자의 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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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세동 조회2,106회 댓글0건 작성일20-12-2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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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 김수팽이 선혜청의 아전인 동생 집에 들렀다. 마당에 쭉 늘어선 항아리를 본 그가 동생에게 물었다. “무엇에 쓰는 것이냐?” “빠듯한 녹봉으로 살기 어려워 집사람이 부업으로 염색을 하는 용기입니다.” 형은 동생을 크게 꾸짖었다. “너는 나라의 녹봉으로 먹고살면서 아전도 못해서 밥을 굶는 백성들을 보지도 못했느냐. 우리가 이런 일을 하면 가난한 백성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살란 말이냐.” 김수팽은 몽둥이로 항아리들을 모두 깨버렸다.

중종 때 문신 조종경의 집에는 큰 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가을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자 행인들이 감탄했다. “감이 저렇게 많이 열렸으니 따서 팔면 돈을 꽤 많이 벌겠는걸.” 담장 너머로 이 말을 들은 조종경의 부인은 얼마 후 그 집을 팔고 이사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집을 옮긴 연유를 묻자 부인이 말했다. “사대부 집에서 과목을 심어 이익을 본다는 말을 들어서야 어찌 체면이 서겠습니까?”

옛 사람들이 주변의 이목을 살핀 것은 염치(廉恥)를 알았던 까닭이다. 우리 선조들은 눈앞에 이익이 있으면 남이 보기에 그것이 떳떳한지를 먼저 생각했다. 염치의 염(廉)은 ‘청렴하다’ ‘살피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청렴하려면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울 치(恥)는 귀 이(耳)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이다. 귀로 마음의 소리, 즉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다. 부끄러운 짓을 할 때 귀가 빨개지는 것도 귀와 마음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가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금 1400만원을 수령한 것을 두고 “염치가 실종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비난 여론이 일자 그는 “내 작품은 대통령 아들이 아니라도 예전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발끈했다. 대통령 아들이 아니어도 나랏돈을 받을지는 알 수 없으나 대통령 아들이기에 가난한 예술가한테 양보하는 미덕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터이다. 그것이 염치다. 서민의 임대료를 걱정하는 대통령은 아들의 지원금 수령에 여태 아무 말이 없다. 부끄러움을 알았다면 대통령 부자의 귀가 빨개졌을 것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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