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톱이 촉발시킨 ‘공매도와의 전쟁’한국 상륙한 ‘반공매도 운동’의 향방은‘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수 있을까만국의 개미들은 왜 공매도에 분노하나 한겨레TV최근 전세계 증시를 달구는 핫이슈는 바로 ‘공매도와의 전쟁’입니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게임스톱을 둘러싼 개인투자가와 기관투자자 간의 치열한 매매 공방입니다. 국내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행동에 나섰습니다. 기관의 횡포와 기울어진 운동장에 맞선 개미들의 ‘집단 봉기’인가, 개미들의 분노와 탐욕이 어우러진 비이성적 ‘머니 게임’인가. 시장의 해석도 분분합니다. 공매도와의 전쟁에서 개미들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요? 한겨레TV‘게임스톱 대전’,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잘 아시다시피 공매도 전쟁의 시발점은 게임스톱이라는 주식입니다. 이 주식을 놓고 미국의 개인투자자와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전례 없는 매매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차전은 개미들의 완승입니다. 지난 1월에만 주가가 6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개미들의 사자 행렬로 한때 최저가 대비 17배 가까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게임스톱 매매 공방에는 우리 ‘서학 개미’들도 적극 동참했습니다. 테슬라를 제치고 하루 7천억원 가까운 거래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전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게임스톱 주가는 하루 50% 가까운 변동 폭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하락 진정되는 양상입니다. 헤지펀드들이 공매도 포지션을 상당 부분 청산했기 때문입니다. 또 집중매수에 나섰던 개미들이 다른 타깃으로 이동하는 양상도 보입니다. 유비에스(UBS) 글로벌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헤지펀드들의 포지션 정리 속도와 규모를 보면 공매도 손실에 따른 압박은 끝난 것 같다”고 말합니다. 300달러를 웃돌던 게임스톱 주가는 100달러대까지 떨어졌습니다. 헤지펀드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공매도 공격을 재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이에 개미들이 다시 집단적 대응에 나선다면 2차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또 게임스톱이 아닌 다른 종목에서 맞붙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직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한겨레TV개미들은 왜, 어떻게 공매도 헤지펀드를 ‘응징’했나미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거대한 공매도 헤지펀드에 맞서게 된 걸까요? 게임스톱은 오프라인 게임팩 회사입니다. 사양산업 종목이죠. 그런데 연초에 새로운 경영진을 영입하면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변신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합니다.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새로운 성장성에 주목해 주식을 사들였고, 4달러대까지 떨어졌던 주가가 30달러대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자 공매도 헤지펀드들이 ‘주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너무 비싸다’며 대규모 공매도에 나섭니다. 아시다시피 공매도는 남의 주식을 빌려 파는 것입니다. 주식 하락에 베팅하는 겁니다.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과 대칭되는 개념이죠. 그런데 헤지펀드들의 공매도율이 무려 140%에 이릅니다. 전체 유통 주식이 100주인데 140주를 팔겠다고 나선 셈입니다. 주가가 안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온라인 커뮤너티 레딧의 주식게시판에서 개미들의 반란이 시작됩니다. 공매도 세력에 맞서 싸우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집니다. 혁명군을 자처하며 레딧에 앞다퉈 구매 인증샷을 올립니다. 무려 300만명을 웃도는 이들이 구매 행렬에 참여합니다. 개미들의 사자 행렬이 워낙 거세지면서 주가는 순식간에 325달러까지 치솟습니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도 여기에 불을 질렀습니다. 테슬라 역시 공매도 헤지펀드의 거센 공격을 받은 적이 있죠. 그는 “공매도는 사기다. 없는 것을 어떻게 파느냐”며 공매도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주가가 급등하자 주가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이 궁지에 몰립니다.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추가적인 손실을 막기 위해 다시 주식을 사들입니다. ‘숏 스퀴즈’라고 합니다. 또 빌린 주식은 일정 시점에 현물 주식으로 사서 갚아야 합니다. ‘숏 커버링’이라고 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사자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고, 주가는 훨씬 더 가파르게 오르겠죠. 헤지펀드들은 큰 손실을 봤습니다. 멜빈캐피털은 운용 자산의 30%가량이 손실이 나서 유동성 위기로 긴급 자금을 차입했습니다. 악명 높은 공매도 헤지펀드 여러 곳이 20~30%의 손실을 봤습니다. 월가에서는 게임스톱 공매도로 헤지펀드들이 입은 손실이 적게는 20조원 많게는 100조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트론은 더 이상 공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겠다며 아예 항복 선언을 했습니다. 미국 정치권도 반응하고 있습니다. 미 의회는 공매도에 대한 규제 강화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스톱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도 열릴 것 같습니다. 게임스톱 매매 공방은 작전세력들의 진화된 모습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공매도 세력들이 무리한 공매도 포지션으로 허점을 보이자, 큰손 개미들이 대중들한테 ‘월가를 응징하자’는 정치적 명분을 내세워 세를 규합했다는 거죠. 그래서 초반에 주식을 사들인 큰손 개미들은 큰 차익을 챙겨 이미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게임스톱 주식의 매매 공방을 주도하고 있는 ‘대장 개미’ 키스 질. 연합뉴스월가 타격한 혁명인가, 비이성적 머니게임인가게임스톱 사태를 둘러싸고 시장 참가자들의 평가가 분분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 기억하시죠. 당시는 정치적 시위에 그쳤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실제 행동에 나선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경제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월가의 이익 독식을 개미들의 힘으로 심판한 것이란 평가입니다. 개미들이 거대 헤지펀드에 대응할 수 있게 된 건 ‘스마트 개미’의 출현입니다. 과거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개미들이 이젠 각종 온라인 커뮤너티와 자유로운 주식 구매 시스템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죠.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세계 상장 주식을 언제든 사고팔 수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너티와 SNS를 통해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몇몇 전업 개인투자자들은 기관 못지않은 분석력과 정보력, 투자기법으로 무장해 있고, 이들의 정보가 다른 개미들에게 빠르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정보비대칭이 상당히 완화된 것이죠. 이번 게임스톱 대전에 참여한 개미들이 300만명에 이릅니다. 엄청난 수의 개미들이 뭉치게 되니 개별 종목에선 웬만한 기관투자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한 겁니다. 불평등에 지친 대중들의 분노가 그 동력이라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이기도 합니다. 경제 민주화의 한 단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중의 분노와 탐욕을 이용한 또다른 작전에 불과하다는 냉소도 적지 않습니다. 저금리와 재정 확대로 주식시장에 몰린 유동성이 만들어 낸 비이성적이고 단기적인 과열 현상이라는 것이죠. 개인의 분노와 탐욕을 자극해 말도 안 되는 주가 상승을 만든 것이고, 결국 개인들간의 폭탄 돌리기 머니게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금융당국도 개미들의 게임스톱 매수가 시세조정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합니다.한국 상륙한 ‘반공매도 운동’ 성공할 수 있을까‘반공매도 운동’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의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란 단체가 최근 공식적으로 ‘공매도 폐지 운동’을 선언했습니다. 이 단체는 과거 고평가 논란 속에 공매도 타깃이 됐던 셀트리온 사태를 계기로 설립된 곳입니다. 이들은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잔고가 많은 셀트리온과 HLB 두 종목을 좌표로 찍고 매수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온라인 주식 커뮤너티에서는 공매도 잔고가 많은 주식들에 대한 좌표 찍기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공매도 대응 방법도 공유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물량 잠그기’입니다. 지난 2014년 중국원양자원이란 주식에 기관들이 공매도 공세에 나서자 소액주주들이 주식 게시판을 통해 집단 대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달 만에 1240원이던 주가가 10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소액주주들이 공매도 세력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케이스로 거론됩니다.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공매도 세력이 주식을 빌리지 못하게 개인투자자들이 ‘대여 제외 계좌 등록’을 하는 겁니다. 거래 증권사에 ‘내 주식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말라’고 약정하는 것이죠. 대여 주식 수를 확 줄여서 기관들이 공매도 주식을 조달하거나 환매수할 수 있는 수단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죠.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운행 중인 ‘공매도 폐지’ 홍보 버스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기울어진 운동장’ 이번엔 바로잡을 수 있을까게임스톱 등 공매도 전쟁의 대상이 된 주식의 주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실질적인 기업 실적과 가치에 수렴할 것입니다. 공매도의 순기능이 시장 과열을 막는 안전장치라고 하지만, 개인들에겐 사실상 없는 강력한 무기를 기관들이 갖고 있는 셈입니다. 기관들은 공매도를 통해 위험을 회피하거나 이익을 늘리고, 마음만 먹으면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작전도 가능합니다. 게임스톱이 개미들의 타깃이 된 것도 유통 주식보다 많은 물량을 공매도하는 비합리적인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우리나라의 공매도는 개인 비중이 0.1%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20%를 웃돕니다. 개인은 사실상 공매도 전략을 쓸 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개인에게는 주식을 매우 짧게 제한적으로 빌려주는데, 외국인과 기관은 수수료만 내면 사실상 무기한 차입이 가능합니다. 증거금도 낮아서 주가가 거꾸로 오른다 해도 손실 부담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법으로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를 하다 걸려도 과태료 몇천만원에 형사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주식시장에 유동성과 효율성을 제공하고 과열을 방지한다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폐지 목소리가 높은 이유입니다. 금융당국은 3일 모든 상장주식에 대한 공매도 금지 조처를 5월2일까지 다시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5월3일부터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를 구성하는 350개 종목에 한해 공매도를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당국이 개인투자자들의 반발과 정치권의 연장 압박에 기존의 재개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절충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도 개선책도 내놨습니다. 금융당국은 주식 보유 잔고를 초과하는 매도 주문 등 이상 거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무차입 거래를 신속히 적발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에게도 투자 한도를 경험과 능력에 맞게 차등적으로 확대 허용할 계획입니다. 최근 법 개정을 통해 4월6일부터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 및 형사처벌 부과 등 처벌 수위가 강화됩니다. 과연 이번엔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이라도 평평해질 수 있을까요? 논썰이 여러분과 함께 지켜보겠습니다.기획·출연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2.4 공급대책 기사 보기▶법관 탄핵 기사 보기[ⓒ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