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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백년전쟁이 빚은 보르도 와인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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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여환 조회1,395회 댓글0건 작성일21-05-0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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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 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프랑스 보르도의 포도밭. 게티이미지뱅크프랑스 왕 루이 7세는 밤잠을 설쳤다. 아키텐 공작인 알리에노르와 앙주 백작이자 노르망디 공작인 헨리 플랜태저넷이 결혼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결별한 지 8주밖에 안 되었는데 그새 재혼하다니!’ 왕좌에 앉아 있다가도 정원을 거닐다가도 불쑥 이 생각이 날 때면 루이 7세는 전 배우자인 알리에노르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전처의 재혼, 잠 못 든 루이 7세곱씹을수록 배가 아팠다. ‘노르망디와 앙주 땅을 상속받아 부모 덕에 꿰찬 녀석이 결혼 상대라니!’ 둘이 결혼했으니 아키텐 땅까지 합하면 그들의 영토는 광대하기 그지없었다. 땅만 놓고 보면 도대체 누가 프랑스의 왕인지 모를 지경이었다.헨리의 핏속에 흐르는 바이킹들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유럽으로 내려와 약탈을 일삼던 노르만족이었다. 이들이 하도 골치 아픈 나머지, 선대 왕이 제발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고 떼어준 땅이 노르망디(노르만족의 땅) 아닌가. ‘그런 녀석 따위가!’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루이 7세의 머릿속은 다음과 같이 뒤죽박죽이 됐다.'헨리 1세(헨리의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노르만 족장 롤로는 서프랑크 왕 샤를 3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 그 대가로 봉신(주군에게 봉사하고 대가로 봉토를 받는 사람)이 되어 노르망디 공작으로 봉해졌고 말이야. 윌리엄 1세(헨리의 외증조부)는 또 어떤가. 바다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해 왕위에 올랐지. 프랑스 왕의 봉신인 노르망디 공작이 잉글랜드 왕이 된 게지. 듣자 하니 그들은 프랑스 땅에 살면서 잉글랜드의 왕 노릇을 한다지! 영어나 나불대는 섬나라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프랑스어를 알아듣기는 할까. 아니지, 이러다 정말 헨리가 잉글랜드 왕이 되는 건 아니겠지.'전성기 앙주제국 영토(왼쪽)와 존 왕 때 모두 빼앗겨 보르도가 포함된 귀엔 지방만 겨우 지켜냈다. 하지만 잉글랜드 전체에서 나오는 세수보다 이곳에서 나오는 세수가 더 많았다. 위키미디어걱정이 현실로... 놓친 '와인의 젖줄'꿈이 절실하면 이루어지듯, 걱정도 깊으면 이루어진다. 루이 7세의 우려대로 2년 뒤 헨리는 잉글랜드 왕좌에 오른다. 헨리 2세가 된 그는 곧 웨일스와 스코틀랜드까지 평정한다. 결혼으로 얻은 알리에노르의 영지를 포함해 피레네 산맥까지의 광활한 영토가 헨리의 발밑에 놓인 것이다. 이 시기의 플랜태저넷 가문의 나라를 앙주 제국 또는 플랜태저넷 제국이라고 부른다.앙주 제국의 노른자는 알리에노르가 가져간 아키텐 땅이었다. 와인으로 거두어들이는 세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러니 루이 7세가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도 당연했다.어느 날 밤. 루이 7세는 아깝기 그지없는 아키텐의 와인으로 시름을 달래다가 결심한 듯 잔을 내팽개쳤다. 언제까지 배 아파만 할까! 작심한 듯 루이 7세 역시 샹파뉴 백작의 딸 아델라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장차 왕위를 이을 왕자를 낳았다.한 맺힌 아버지를 위한 복수부왕 루이 7세의 한 맺힌 과거를 듣고 자란 필리프 2세는 복수를 계획한다. 플랜태저넷 가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부자간 갈등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내부갈등 유발이라, 기막힌 계획이었다. 필리프 2세는 아버지 헨리 2세에게 불만이 많은 왕자를 부추겨 반란을 도왔다. 막내 왕자 존에게는 형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전쟁 길에 나선 사이에 왕위를 찬탈하라고 충동질했다.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필리프 2세는 이 틈을 타 영주들을 회유하거나 전쟁을 벌여 플랜태저넷 제국의 영토를 조금씩 빼앗았다. 어느새 잉글랜드 왕 존은 영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 빼앗기고 말았다. 잉글랜드 귀족들은 부랴부랴 왕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존 왕에게 들이밀어 서명을 받아냈다. 참고로 당시 마그나카르타에 참여한 런던시장 윌리엄 하들 경은 와인 업자였고, 그는 시의회 의원의 3분의 1을 와인 업자로 구성했다.그나마 위안이라면 아키텐 공국의 땅 가운데 알짜배기인 귀엔 지방만은 잃지 않은 것이었다. 귀엔의 보르도 와인 상인들은 전함과 군수물자를 지원하며 존왕의 힘이 되었다. 사실 보르도 상인들 입장에서는 잉글랜드가 최대 와인 시장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귀엔 지방, 보르도 와인이 성장한 이유존 왕으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라 보르도에 세금 혜택이라는 큰 선물을 안겼다. 더불어 보르도 와인을 대거 주문했다. 이 무렵부터 보르도 항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보르도 지역 곳곳에 포도밭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그런데 메독 지구 한 곳은 예외였다. 이 지역은 강이 수시로 범람하는 습지대였다. 이런 땅이 훗날 프랑스 최고의 와인 산지가 될 거라고 누가 예상했을까.오늘날 보르도에서 생산하는 클라레(Claret). 과거 영국에서는 보르도 와인을 클라레라 불렀다. 클라레는 프랑스어 클레레(Clairet)에서 온 말이다. 플라넷 보르도 홈페이지 캡처보르도 상인들은 보르도 와인의 특색을 살려 잉글랜드 시장을 공략했다. 맛이 가볍고 색이 연한 데다 가격도 좋은 덕분에 보르도 와인은 잉글랜드에서 인기가 좋았다. 와인 빛깔이 선홍빛 장미색에 가까워 잉글랜드 사람들은 보르도 와인을 클라레(Claret)라 칭했다. 클라레는 프랑스어 클레레(Clairet)에서 온 말이다.클라레의 인기가 치솟자 잉글랜드의 농가는 포도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둠즈데이북’에 따르면 한때 잉글랜드에도 상업용 포도밭이 1,300여 곳이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와인을 만들어도 클라레에 밀려 찾는 사람이 없으니, 잉글랜드에서는 포도밭을 갈아엎어야 했다.한편 땅이란 땅은 죄다 포도밭이 들어선 귀엔 지방은 유럽에서 최고로 부유했다. 잉글랜드 전체의 세수보다 귀엔 지방의 세수가 더 많았을 정도였다. 이러니 프랑스로서도 귀엔 지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귀엔을 둘러싼 갈등그래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프랑스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다. 1328년 카페왕조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4촌인 필리프 6세가 즉위해 발루아 왕조를 열었다. 그런데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자신에게 프랑스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자신의 어머니가 샤를 4세의 여동생이니 4촌인 필리프 6세보다 3촌 관계인 자신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화가 난 필리프 6세는 이참에 귀엔 지방을 몰수하려고 했다. 에드워드 3세는 귀엔을 지켜내야 했기에 프랑스 왕의 가신으로 충성을 맹세하며 이 일은 일단락됐다.그런데 프랑스가 잉글랜드와 사이가 안 좋은 스코틀랜드를 지원하자 에드워드 3세는 플랑드르에 양모 공급을 중단했다. 플랑드르는 당시 프랑스의 최대 세수원이자 모직 산업의 중심지인 터라 필리프 6세도 가만있지 않았다. 오랜 기간 눈독을 들인 귀엔 지방을 마침내 몰수해버린 것이다.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왕위 계승권을 재차 주장하며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백년전쟁이 시작된 것이다.에드워드 3세는 명목상으로는 왕위 계승권을 내세웠지만 최고의 세수원인 귀엔 지방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객관적 전력으로 보면 감히 넘보지 못할 프랑스에 싸움을 건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잉글랜드의 선전포고를 받은 프랑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랄까. 그런데 막상 전쟁이 벌어지자 모두의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장궁을 든 잉글랜드 병사들이 쏜 화살에 프랑스의 말들이 퍽퍽 쓰러졌고, 프랑스 기사들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갑옷만 해도 무거운데 땅마저 질척거리니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번번이 싸움에서 패했다.잉글랜드는 승전을 이어갔다. 슬라위스 해전에서 프랑스군을 꺾은 데 이어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등에서 잇달아 승기를 올리며 프랑스 땅을 휘젓고 다녔다. 푸아티에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은 프랑스 왕 장 2세를 생포하고 노르망디와 귀엔 지방을 탈환한다.프랑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잉글랜드군의 약탈도 심한 데다 흑사병까지 돌아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자크리의 난으로 사회 혼란은 극으로 치달았다. 그나마 전염병 덕분(?)에 전쟁이 잠시 중단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프랑스는 그 뒤로도 연전연패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샤를 5세의 뒤를 이은 샤를 6세가 정신병에 걸리자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냐크파가 권력을 서로 장악하려고 내분이 일어났다. 이 틈을 타 잉글랜드 왕 헨리 5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고 부르고뉴파와 손잡고 파리까지 점령한다. 잉글랜드군은 기세를 몰아 프랑스군의 마지막 요새인 오를레앙 성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이때 잔 다르크가 등장하여 오를레앙을 구하지 않았다면 프랑스는 지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잔다르크의 등장, 귀엔을 되찾다잔다르크는 부르고뉴파에 의해 잉글랜드군에 넘겨져 마녀라는 판결을 받고 화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잔 다르크 덕분에 기사회생한 프랑스인들은 그때부터 프랑스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생겼고 ‘애국심’이 고취되었다고 한다.전쟁 막바지인 1451년 프랑스는 그토록 탐내던 귀엔을 되찾았다. 하지만 300년 동안 잉글랜드에 속했던 귀엔 사람들은 프랑스 국왕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와인 업자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징수한 탓이었다. 와인 업자들은 한술 더 떠 잉글랜드에 도움을 요청했다.마침내 1452년 잉글랜드군 총사령관 존 탤벗이 귀엔에 잉글랜드 깃발을 다시 꽂았지만, 깃발은 얼마 나부끼지 못하고 뽑히고 말았다. 결국 카스티용 전투(1453)에서 탤벗은 전사했고 잉글랜드는 프랑스에 패하고 말았다. 11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이로써 귀엔 지방은 300년 만에 프랑스 땅이 되었다.샤토 탈보(Chateau Talbot)와 세컨드와인 코네타블 탈보(Connétable Talbot). 샤토 탈보 레이블에는 1400~1453년 귀엔의 영주였던 총사령관 탈보의 옛 영지라고 적혀 있다. 와이너리 홈페이지 캡처마지막 전장을 누빈 잉글랜드 기사 탤벗은 과거 포로로 잡혔을 때 “프랑스를 향해 다시는 칼을 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스티용 전투에서 맨손으로 싸웠다고 한다. 장수가 칼 없이 전장에 나가다니... 아무튼 기사로서의 명예를 지킨 탤벗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와인도 생겼다. 보르도 생줄리앙 마을의 그랑크뤼클라세 4등급 ‘샤토 탈보’이다.중저가 보르도 와인의 반전 인고의 세월 끝에 되찾은 땅이었지만 프랑스 국왕들은 보르도가 눈엣가시였다. 그래도 ‘와인의 경제성’을 알았기에 잉글랜드로의 와인 수출까지는 막지 않았다. 대신 높은 세금을 매겨 왕실 곳간을 채웠다. 와인 상인들은 잉글랜드에도 전보다 높은 관세를 내야 했다. 자연히 보르도 와인 가격이 2배까지 오르더니 3배까지 치솟았고 수출량은 대폭 줄었다.잉글랜드의 와인 상인 길드인 빈트너스 컴퍼니 소속 수입상들은 보르도 와인을 대체할 와인을 찾아 에스파냐 포르투갈 지중해로 향했다. 보르도 상인들도 다른 판로를 뚫어 수출처를 다각화했다. 유럽 전역에 와인을 수출할 수 있도록 국왕 허가를 받아 적은 양이지만 쾰른, 함부르크, 브뤼헤, 에든버러에까지 와인을 수출했다.이후 보르도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요동치는 정치 상황에 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잉글랜드를 사로잡았던 보르도 와인은 실은 양으로 승부하는 중저가 와인이었다. 오늘날의 명성은 큰 위기를 겪으면서 품질을 높여 맛과 향이 좋은 와인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보르도의 역사는 전쟁이 빚은 와인의 역사인 셈이다.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백서] '별장 동영상' 왜 김학의라고 말 못 했나▶[엄마] ‘문소리의 엄마’에서 ‘배우 이향란’으로▶한국일보닷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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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협의의 통화라고 해서 현금이나 예금 등 바로 쓸 수 있는 돈을 가리킵니다. M2는 광의의 통화로 M1에 더해서 2년 미만의 짧은 만기에 묶여있는 상품을 가리키죠.그러니까 M2 내에서 M1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다는 뜻은 뽑아서 쓸 수 있는 돈이 많다는 거기 때문에 유동성의 진성 에너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M1/M2 값이 올해 2월 기준 36.9%로 1986년 1월 1일 이후 역대 최대치입니다. 거기에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도 풀리고 있죠. 그러니까 유동성은 전례 없이 풍부하다고 볼 수 잇습니다.수요가 늘고 공급이 주는데 유동성이 강화되는 시기가 21~22년이기 때문에 22년까지는 상승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다만 2023년부터는 중장기 하락을 예상합니다. 서울 부동산의 상승에 타격을 가할 만한 이벤트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첫 번째는 방금 말씀드린 대표적 서울 부동산 실수요 층인 서울·경기 10~11년 차 부부가 2024년부터 급감하기 시작합니다 2014년부터 결혼을 안 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또 2023~2024년에는 서울 입주 물량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017년에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재건축 단지들이 관리처분 인가를 신청하려고 사업 속도를 높였습니다. 그 결과 7만 5,000 호가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했고요. 이 7만 5,000 호가 입주하는 시기가 2023~2024년입니다. 주로 동남권인데 대표적으로 둔촌 주공, 개포 1, 4단지,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 잠실의 진주, 미성 크로바 등입니다.그러니까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나는 시기가 2023~2024년이거든요. 서울이 2014년부터 상승을 했으니까 제 전망대로 2022~2023년까지 상승하면 거의 9년 8년을 상승하는 겁니다. 버블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있는 상황에서 입주물량의 증가와 수요 감소가 시작된다면 서울 부동산 시장에 1차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봅니다.더 중요한 것은 2026년 정도로 예상되는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기간 만기로 인해 매물이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역대 최장기간 상승장을 보이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주택임대사업자 활성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할 경우 최대 8년 동안 세제혜택을 주면서 매물이 잠기는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주택임대사업자 등록 물량이 2015년부터 증가하다가 2018년에 급증했거든요. 단순히 8년 동안 매물이 잠긴 물량이라고 감안한다면 이 물량 2026년에 크게 풀릴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마지막으로 3기 신도시도 2026년부터 입주를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판교, 광교, 위례를 봤을 때 지구를 지정한 지 7~8년 후에 입주를 개시했거든요.3기 신도시가 2019~20년에 지구 지정을 했기 때문에 7~8년 후인 2026~2027년부터 입주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그래서 2023년 전후를 고점으로 보고 재건축 입주 시작을 기점으로 점차 하락이 시작되다가 주택임대사업자 물량과 3기 신도시 물량이 겹치는 2026년의 하락폭이 좀 커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시장에 부동산 불패라는 인식이 강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서울 부동산은 전세가가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제가 말하는 2023년 이후 하락은 안 오는 게 아니냐고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23~2024년부터 쏟아질 입주 물량이 전세가율부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전세가율 자체가 현재 높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하락폭은 2023~2024년에는 미미할 거라고 보여지고요.하지만 2026년에 3기 신도시 입주를 시작하면 서울의 전셋값에 타격을 줄 거라고 봅니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가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과는 상관관계가 의외로 약하더라고요. 오히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는 서울이 아닌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과 관계가 굉장히 깊었습니다. 그러니까 서울 아파트 전세가 너무 오르면 서울 밖으로 밀려나가는 거죠.예를 들어 2015년부터 동탄 2신도시 입주 물량이 생기기 시작하다가 2017~18년에 절정을 이루는데요. 2018년 하반기에 서울 아파트 전세가가 하락했거든요. 데이터를 봤더니 2016년 4분기에 동탄의 전세가가 고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화성 동탄 신도시의 입주물량을 못 견뎠기 때문이죠. 한 분기 뒤인 2017년 1분기에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그 위에 있는 수원의 전세가 고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하고요. 또 수원 위로 올라가면 있는 용인시, 성남시가 연달아 2017년 2분기, 3분기에 전세가 고점을 찍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2018년 1분기에 바로 그 위에 위치한 서울이 고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동탄 입주 물량의 여파가 분기별로 타고 타고 올라가서 1년 뒤에 서울에 영향을 미쳤다는 거거든요. 실제로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까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1년 뒤 서울 아파트 전세가 상승폭이랑 연관이 돼 있더라고요.그렇기 때문에 3기 신도시가 2026년부터 입주를 개시한다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에 무조건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여지고요. 서울 집값을 떠받치고 있는 전세가율이 떨어진다면 서울 부동산의 하락장도 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주는 여러가지 변수에 대한 평가는?△ 올해 4개월 동안의 큰 변수는 2.4 대책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수들은 부동산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상승세가 여전하다고 봅니다.첫 번째는 2.4 대책도 오세훈 실장의 당선도 수요나 공급 측면에서 단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2.4 대책의 성패를 가를 공공재건축·재개발이 얼마나 많은 호응을 이끌었는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또 하나는 오세훈 시장이 당선이 됐지만 현재 역학 구도상 25명의 구청장 중에 24명이 민주당 소속이고, 109명의 시의원 중에 101명의 민주당 소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 소속의 서울시장이 1년 임기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되거든요. 설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단기적인 물량 공급으로 이어질 상황은 아니고요.다만 이제 앞으로 영향력이 큰 변수는 개인적으로 대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정책의 큰 방향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 부동산의 최장기간 형성을 이끌어낸 요인은 저금리 외에도 정책의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을 뒤집을 경우는 기존 정책의 부작용으로 생긴 제 가치를 찾아서 꺼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거든요.첫 번째가 이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양도세를 인하한다고 하면 대규모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져 나와서 집값의 매매 하락을 이끌 거라고 봅니다.다만 많은 분들이 양도세를 인하하면 투기세력들에게 이제 현금 차익 실현의 기회를 주게 되는 게 아니냐, 다시 또 부동산에 그들이 들어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세제 구도상 양도세를 완화하더라도 취득세랑 보유세가 굉장히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이 차익을 실현하고 다시 서울에 들어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서울은 다주택자가 2018년부터 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시장이거든요.또 하나는 기존에 약속된 주택임대 사업자 세제 혜택을 박탈한다고 할 경우, 주택임대 사업자가 갑자기 늘어난 세금을 못 견디고 매물을 토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이러한 정책의 대규모 변화가 수반되면 대선 이후에 제 전망과 다르게 그 이후로 집값이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있지 않나 예상합니다.▲ 서울 부동산 모니터링을 위해 지켜봐야 할 지표는?△서울 부동산 시장을 모니터링 할 때 눈여겨 보는 전세가율과 주택 구입 부담 지수 두 가지입니다. 전세가율을 통해서 과거 어느 시점과 현재 상황이 비슷한지를 볼 수 있고, 주택구입 부담지수를 통해서 현재의 버블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지금은 전세가율이 56%입니다. 6%라는 전세가율이 과거 어느 때랑 비슷하냐면 1999년, 2002년 그 다음에 2013년이랑 비슷하거든요. 1999년, 2002년은 전세가와 매매가가 같이 오르는 상황이었고, 2013년은 하락이 끝나가는 시점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전세가율 56%는 중장기 하락을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높은 전세가율이거든요.그렇기 때문에 현재 전세가율을 고려하고 또 2021~2022년에 입주물량이 급감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전세가를 자극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전세가율이 56%에서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질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주택구입부담지수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에서 분기마다 발표하는 자료입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의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이 중위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낸 지수입니다. 과거 전고점이 2008년 2분기에 164.8이고, 2018년 4분기에 또 164를 찍고 내려갔습니다. 164가 어느 정도냐면 중위소득 가구가 중위가격 주택을 살 때 원리금 상환으로 월 소득의 41%를 지출하는 수준입니다. 작년 4분기에 주택 구입 부담 지수가 전 고점을 넘어 168.6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인즉슨 지금까지는 서울이 중위 소득 가구가 중위 가격 주택을 살 때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월 소득이 41%를 낸 게 전고점이었는데, 작년 4분기부터 월 소득의 42%가 원리금을 상환하는 데 쓰인다는 거죠. 저금리 상황을 고려해도 원리금 상환부담이 너무 높은 상황입니다.현재는 역대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봤을 때는 역대 최고점을 갱신한 거품 상황이 거품상황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죠. 물론 역대급 유동성으로 인해 버블이 당분간 유지 될 수 있겠지만, 최장기간 부동산 시장 상승은 역대급 유동성과 정책 부작용으로 발생한 것이거든요. 따라서 정책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부분이 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가면, 또는 정책의 부작용의 시효가 끝나버리면 정책의 부작용으로 생긴 버블은 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허가랑 착공 물량도 보긴 보는데 서울은 인허가 착공 물량과 연관관계가 없는 건 아닌데 다른 지역보다 좀 낮더라고요.지방 광역시에 진입을 희망하는 분들이 눈여겨볼 만한 게 착공 물량, 인허가 물량입니다. 서울과 다르게 지방 광역시들을 보니까 매매가랑 전셋값을 같이 움직이더라고요. 서울은 매매가와 전셋가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지방 광역시의 부동산은 입주 물량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입주 물량은 전세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데 전세가랑 매매가가 같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착공 물량은 향후 2~3년 뒤에 입주 물량이고, 인허가 물량은 향후 4~5년 뒤에 입주 물량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착공 물량, 인허가 물량은 국토교통부에 다 나오거든요. 착공 물량 인허가 물량을 보시고 착공이나 인허가가 착공이 줄면 2~3년 뒤에 이 광역시는 괜찮겠다, 상승 탄력을 받겠다고 보면 될 겁니다./정현정 기자 jnghnjig@sedaily.com▶ [지구용 레터] 스팸 뚜껑 사라진거 아니었어?▶ 서울경제 더 폴리틱스 뉴스를 만나보세요!▶ 네이버 채널에서 '서울경제' 구독해주세요!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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